그럼에도 불구하고

등록일 2026년03월04일 19시20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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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역사학을 전공하기로 결정하면서 약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승자의 기록에 가려진 역사를 공부하면 자연스레 우리 사회를 잘 이해할 수 있으리란 생각에서 나온 결심이었다. 그러나 대학 입학 후 단순히 역사를 공부하는 것만으론 한계가 있단 것을 깨달았다. 그 무렵 대외활동에서 만난 지인으로부터 학보사 활동을 추천받았다. 글쓰기를 좋아해서가 아니었다. 사람들을 직접 인터뷰하며 다양한 삶을 마주할 수 있겠단 기대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를 비추고 워치독(Watch Dog)*으로서 권력을 감시하는 것이 언론의 목적이란 말이 깊이 끌렸고 그 말이 내가 부딪힌 한계를 해결할 수 있겠단 생각에 학보사를 지원했다.  

 

추가 모집으로 들어온 학보사 활동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몇 주에 걸친 방중교육 과정을 단기간에 숙지해야 했고 수업과 학보사를 병행하기 위해 매번 왕복 6시간의 이동 시간을 감수해야 했다. 밤을 새며 기사를 마감하고 홀로 학보사실에 남아 아침을 맞이하는 것 역시 외롭고 지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힘들게 만들었던 건 기사를 작성하는 일이었다. 기자는 중립성을 위해 사견을 배제해야 한다. 독자들이 기사를 읽고 다양한 생각을 펼칠 수 있도록 여백을 남겨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접적인 표현 없이 △기사 내용의 취사선택△단어 표현△인터뷰 내용의 편집만으로 기자의 사견은 드러날 수 있다. 그래서 단어 하나가 가진 영향력을 신경쓰며 퇴고를 거치는 과정은 낯설고도 어렵게 느껴졌다. 어떤 땐 기사 구성의 한 부분인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독자의 시각을 제한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심이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기도 했다. 세 번의 발간을 지나도록 여전히 기사 쓰기가 어렵게만 느껴졌고 정작 글쓰기를 힘들어하는 기자라는 사실이 부끄럽게 다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학보사를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글쓰기를 어려워했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어려움을 견디는 시간들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인고의 시간이었다. 특히 취재를 위해 진행했던 인터뷰 과정들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층 넓어진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여전히 부족한 부분은 △기사 분석△기사 작성 연습△필사 연습을 통해 보완해 나가고 있다.   학보사에서 보낸 시간들은 언론인으로서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하는 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해 주었다. 화제성이 큰 사건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서 소외된 이들에 주목하고 불편한 진실을 기꺼이 마주하는 자세. 그것이 내가 학보사에서 배운 것이었다. 학보사 활동을 두 학기째 보내고 있는 지금도 그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비록 이러한 노력이 순간의 작은 빛에 그칠지라도  언젠간 나를 더 성장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학교생활의 일부분으로 시작했던 학보사 활동이 어느새 내 삶의 일부가 됐다. 학보사를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변해 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처음 학보사를 추천해 준 지인 균님에게 감사를 전하며 이 글을 마친다.

 

*워치독(Watch Dog): 정치 및 자본 권력을 감시하는 감시견

이하은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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