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스마트폰을 켠다. △뉴스△유튜브△SNS를 보며 수많은 정보를 접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느 때보다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지만 정작 무엇을 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스스로 판단하기보다 알고리즘에 따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보고 싶은 것만 보며 자신과 다른 의견은 외면한다. 어쩌면 우리는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점차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주제 사라마구(José Saramago)의 <눈먼 자들의 도시>는 한 남자가 운전 중 갑자기 시력을 잃으면서 시작된다. 특이한 점은 모든 것이 어둡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새하얗게 보인다는 것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백색 실명은 전염병처럼 도시 전체로 퍼지고 정부는 감염자들을 폐쇄된 정신병원에 격리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인간 사회를 지탱하던 질서는 순식간에 무너진다. 식량을 차지하기 위한 폭력과 착취가 벌어지고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를 물어뜯는다. 그 와중에도 유일하게 시력을 잃지 않은 의사의 아내는 끝까지 사람들을 돕고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이 소설이 특별한 이유는 실명을 단순한 질병으로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사라마구는 일반적인 ‘검은 실명’이 아닌 ‘백색 실명’을 통해 실명이라는 현상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일반적으로 눈이 멀면 어둠을 떠올리지만 작품 속 인물들은 오히려 모든 것이 하얗게 보인다고 말한다. 이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너무 많은 빛 속에서 본질을 잃어버린 상태를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생각해 보면 현대 사회 역시 그렇다. 우리는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살아간다. 하루에도 수백 개의 △게시물△기사△영상을 소비한다. 누군가의 고통은 잠깐의 뉴스거리가 되고 사회 문제는 몇 번의 클릭으로 소비된 뒤 잊힌다. 보고는 있지만 제대로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작품 속 인물들이 실명하자마자 곧바로 인간성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그들의 내면에 숨어 있던 욕망과 이기심이 점차 드러난 것이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쉽게 타인을 착취하고 폭력을 정당화한다. 그렇다고 작품이 인간에 대한 절망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의사의 아내는 끝까지 다른 사람들의 눈이 돼 준다. 그는 자신의 안전보다 공동체를 우선하며 사람들을 돌본다. 사라마구는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질 보여주는 동시에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연대와 희생이 가능하다는 사실 역시 이야기한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사람들은 기적처럼 시력을 되찾는다. 그러나 의사의 아내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볼 수는 있지만 보지 못하는 눈먼 사람들 말이에요”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이 문장은 오래 남는다. 우리는 정말 보고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넘쳐나는 정보와 욕망 속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는가. <눈먼 자들의 도시>는 단순히 실명에 관한 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에 가깝다.
정일성 기자 12ilseong@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