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구 없는 안전망,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

등록일 2025년09월17일 23시59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기사글축소 기사글확대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지난달 11일에 방송된 티비 프로그램 ‘무엇이든 물어보살’에 기초수급비가 끊길까 걱정인 사연자가 나왔다. 그는 아르바이트(이하 알바)를 하면 수급비를 지원받지 못해 알바를 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수급자들의 근로 의지를 잃게 만들거나 탈수급 후에도 다시 빈곤으로 돌아가게 하는 구조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본 기사를 통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현황△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문제점△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알아보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현황 및 문제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에 따라 그들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활을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공부조 제도이다. 외환위기 이후 급증한 빈곤층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시행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단순한 시혜적 구호를 넘어 권리로서의 복지를 제도화했단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보건복지부의 통계에 따르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는 △2015년△2020년△2024년 기준 약△164.6만△213.4만△267.3만 명으로 나타났으며 가구수는 역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전체 수급자 중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40% 이상으로 연령별 수급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 해당 제도는 오랜 시행과 제도적 보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계를 내재하고 있다.

 

해당 제도의 첫 번째 문제는 엄격한 선정 기준에서 비롯된 복지 사각지대다. 가장 큰 논란을 불러온 것은 부양의무자 기준이다. 신청자가 아무리 소득과 재산 기준에 부합하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이나 재산을 보유한 자녀 혹은 형제 등이 있으면 수급이 불가능했다. 또 가족 간 실제 부양 관계가 단절됐거나 갈등이 심각한 경우에도 ‘법적 부양 가능성’만으로 수급이 거부되는 사례가 속출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21년 10월부터 근로 능력이 없어 생계 활동이 어려운 △노인△장애인△한부모가구와 같은 저소득 취약계층에 대한 생계급여의 부양의무자 기준을 없앤 바 있다. 또한 2026년도부터 생계급여의 부양의무자 기준을 다음 해부터 ‘연 소득 1.3억 원 또는 일반재산 12억 원 초과’로 완화해 수급 사각지대를 해소할 것이란 계획을 내놓았다. 보건복지부가 의료급여의 경우에 중증장애인부터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하는 방식으로 개선을 이어왔으나 여전히 부양의무자 기준은 존재한다. 이와 관련해 보건복지부는 실제 이전되지 않은 부양비를 수급자 소득에 포함해 산정해 수급 탈락자를 양산한다고 비판받아 왔던 부양비 제도를 개선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언급한 상황이다. 그러나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엔 부양의무자 기준이 일부 남아 있어 실제로 가족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지원에서 계속 배제되고 있다. 

 

복지 수급 과정에서 정보의 비대칭성과 낮은 접근성은 수급 자격이 있는 이들을 탈락시키는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많은 잠재적 수급자들이 △신청 방법△진행 절차△최종 결정에 이르기까지의 전반적인 과정에 대한 명확한 안내를 받지 못하고 있고 복잡한 용어와 서식을 마주하며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고령층과 같이 디지털 정보에 취약한 계층에게 이 같은 서류들은 해독하기 어려운 암호와 같다. 이로 인해 작성 과정에서 오류를 범하거나 초반부터 지레 겁을 먹고 신청을 주저하게 만든다. 빈곤사회연대의 인터뷰에 따르면 A 씨는 “국어를 잘 못해 서류 작성하는데 꽤 힘들었다”며 “하마터면 서류 제출도 못 할 뻔했다”고 전했다. 또한 △가족 관계△소득△재산 등을 증명하기 위해 요구되는 서류들을 준비하는 과정은 신청자에게 과도한 시간적경제적 부담을 지운다. 빈곤사회연대의 인터뷰에 참여한 B 씨 역시 다양한 채무 관계에 얽혀 있는 모든 금융기관을 돌아다니며 과거 거래 내역을 받느라 진땀을 흘린 경험에 대해 말하며 불만을 토로했다. 여러 기관을 직접 방문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서류 누락에 대한 불안감은 복지제도의 문턱을 더욱 높여 가장 절실한 이들이 제도의 보호 밖으로 밀려나는 결과를 초래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구조적 문제는 수급자들의 자립 의지를 저해하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현행 제도는 수급자가 근로를 통해 소득을 얻으면 그 소득액만큼 생계급여를 삭감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후 수급자들이 저축이나 적금 만기 시 발생하는 이자소득 대부분이 생계급여에서 삭감되면서 저축의 보람을 느끼기도 전에 지원금이 줄어드는 역설적인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실제로 저소득층을 위한 고금리 적금상품에 가입한 수급자들이 이자소득이 발생하자 오히려 수급액이 줄어드는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는 표면적으론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근로의 가치를 상실시키고 ‘일할수록 손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빈곤의 덫’으로 작용할 수 있다. 

 

 

◆나아가야 할 방향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우리나라 복지제도의 근간으로서 빈곤층을 보호하는 최후의 사회안전망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근로 의욕 저하△복잡한 행정 체계 △엄격한 수급자 선정 기준 등 여러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 먼저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부양의무자 기준과 과도한 재산 평가 방식에 대한 전면적인 개편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실질적으로 폐지해 실제로 기초보장 급여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운용하는 것이다. 부양의무자 기준에 대한 조사도 필수 사항으로 하지 않고 문제가 되는 경우에만 개별적으로 조사가 이루어지도록 유연하게 운용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부양의무자 기준이 기초보장 급여 신청에 장애물로 작용하는 일이 없도록 하며 나아가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해 기초보장 급여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들 수 있다. 

 

복지 수급 자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잡하고 경직된 행정관리체계로 인해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른바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개선 역시 시급하다. 우선 다양한 매체와 ‘찾아가는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수급 대상자들에게 신청 절차에 대한 기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정보의 부재로 인해 신청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사례를 최소화하고 잠재적 수급자가 스스로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과도하게 복잡하고 어려운 신청 서식도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특히 노년층과 같은 정보 취약계층에겐 신청 과정에서 좌절감을 안겨줄 수 있다. 따라서 서식을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작성할 수 있도록 간소화하고 수요자 중심의 친절한 안내가 병행돼야 한다. 그리고 각종 증빙서류를 제출하는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이를 통해 서류 누락으로 인한 탈락을 원천적으로 방지하고 신속하고 효율적인 행정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행정안전부는 국민이 민원이나 공공서비스 신청 시 행정 공공 기관이 이미 수집하고 보유한 정보를 구비서류로 제출할 필요 없도록 구비서류 제로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행정 서비스 신청 시 다른 행정기관의 서류를 발급받기 위해 여러 행정기관에 방문하는 일이 없도록 △농업인 바우처(Voucher) 지원△예방접종비 지원△행복출산 원스톱 서비스 등 서류 제출을 생략하도록 민원 제도를 개선하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또한 ‘공공 마이데이터(Mydata)’와 같은 행정정보 연계 시스템을 활성화해 신청자가 직접 서류를 발급받아 제출하는 번거로움 없이 행정기관이 자동으로 자격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빈곤의 덫을 제거하고 수급자의 자립을 유도하기 위해선 일을 시작하더라도 손해를 보지 않는 제도를 설계할 필요성이 있다. 수급자의 근로 의욕 제고를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인 근로소득공제 확대도 중요하지만 소득 증가 시 급여가 한 번에 끊기는 ‘절벽 효과’를 완화해 ‘근로를 통해 실질적으로 생활이 나아진다’는 인식을 고취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이를 위해 근로소득 공제 확대와 청년 추가 공제를 통해 근로 유인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생계급여 측면에서 청년 해당 소득 공제를 확대해 현재 근로사업소득은 일반 수급자의 경우 그 소득 중 30%를 공제하되 29세 이하의 청년에게는 ‘40만 원+30%’ 추가 공제를 적용하고 있다. 다음 해부터는 청년이 스스로 근로해 자활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기 위하여 추가 공제 적용 대상을 29세 이하에서 34세 이하로 확대하고 추가 공제금을 40만 원에서 60만 원으로 인상한다. 하지만 이러한 단순한 공제나 단기적 사업만으로는 빈곤의 덫을 해소하기 어렵다. 따라서 근로 능력이 있는 대상자의 진정한 자활을 위한 실질적인 자립 서비스를 확대해 장기적인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단순한 생계 지원을 넘어 자립을 촉진하는 제도로 발전하기 위해선 △근로 유인 강화△부양의무자 기준 폐지△행정절차 간소화라는 세 축에서 구조적 개선이 필요하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수급자가 온전히 자립할 수 있는 구조로 개편될 때 단순한 안전망을 넘어 수급자의 삶을 변화시키는 실질적인 도구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채연 기자 11chaeyeon@hufs.ac.kr

이채연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추천 0 비추천 0
유료기사 결제하기 무통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가장 많이 본 뉴스

기획 심층 국제 사회 학술

포토뉴스 더보기

기부뉴스 더보기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현재접속자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