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심에서 귀가 중이던 여고생이 일면식 없는 남성의 공격으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며 사회적 충격을 일으켰다. 경찰은 가해자 장윤기(이하 장 씨)를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경찰 조사에서 장 씨는 별다른 목적 없이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이라고 진술했으나 △범행 며칠 전부터 흉기를 들고 거리를 돌아다닌 점△범행 전 휴대폰 전원을 꺼 수사당국의 추적을 피한 점△피해자를 살해한 직후 무인 세탁소에서 피 묻은 옷을 세탁해 증거 인멸을 시도한 점을 고려했을 때 불특정 대상에 대한 계획범죄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게 됐다. 이처럼 특별한 원한 관계없이 불특정 대상을 향한 이른바 묻지마 범죄가 반복되며 시민들의 불안감 또한 커지고 있다. 일각에선 반복되는 묻지마 범죄의 배경에 사회의 누적된 좌절감과 온라인 공간에서 확산되는 혐오 문화 등이 자리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본 기사를 통해 △묻지마 범죄의 현주소△묻지마 범죄의 원인△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알아보자.
◆묻지마 범죄의 현주소
이번 광주 여고생 살인 사건과 같이 구체적인 범행 동기 없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이른바 ‘묻지마 범죄’는 지난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더욱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해당 사건은 서울 강남역 인근 남녀공용 화장실에서 30대 남성 김 씨가 일면식 없는 20대 여성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사건으로 가해자는 경찰 조사에서 ”피해자와는 알지 못하는 사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지난 2023년 또다시 서울 신림역과 경기 성남시 서현역에서 잇따라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하며 시민들의 불안감이 확산됐다. 당시 가해자들은 번화가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범행을 저질렀으며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해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이후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정부에서 4천명 규모의 형사기동대와 기동순찰대를 신설하고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중증 정신질환자 사법입원제 검토△살인예고 및 공공장소 흉기소지 처벌 규정 신설△‘이상동기 범죄’* 용어 공식화 등의 정책을 발표했으나 이후 이어지는 관련 범죄들을 막진 못했다.
CBS노컷뉴스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발생한 이상동기 범죄(묻지마 범죄)는 총 127건으로 집계됐다. 연도별 발생 건수는 △2023년 46건△2024년 42건△2025년 39건이며 이상동기 범죄 10건 중 3건 꼴로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 사건으로 나타났다. 또한 대법원 사법정보공개포털에 따르면 지난 2023년부터 2025년까지 ‘묻지마 범죄’로 분류된 판결문 117건 중 총 77건(65.8%)이 △노인△미성년자△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인 것으로 밝혀졌다.
◆묻지마 범죄의 원인
묻지마 범죄 가해자의 특징 중 하나는 대다수가 경제적 소외 계층이었다는 것이다. 대검찰청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묻지마 범죄의 가해자 중 85.4%가 월 평균 소득이 100만원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근 소득 양극화 문제가 심화되면서 취약계층의 어려움 또한 커지고 있으며 이에 따른 사회적 불만 증가가 묻지마 범죄의 주요 배경 중 하나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상균 백석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묻지마 범죄는 좌절감과 실패감 등이 쌓이다 어떤 계기로 폭발한 것”이라며 “청년들의 취업이나 경제적 양극화 같은 사회 구조적 원인이 분노를 불렀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특히 사회를 향한 적대감을 완충해 줄 최소한의 지지 기반인 가족이나 직장마저 없는 사회적 고립 상태는 이러한 문제를 더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17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전국 14개 교도소에 수감 중인 묻지마 범죄자 60명을 조사한 결과 전체의 66.7%(40명)가 무직 상태였으며 상당수가 가족 및 사회적 관계로부터 단절된 상태에 놓여 있었다. 박지선 숙명여자대학교 사회심리학과 교수는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무차별 범죄의 원인을 단순한 정신질환으로 환원해선 안 된다”라고 지적하며 “가정학교직장 등에서의 사회적 단절과 소외 경험이 피해의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라고 언급했다.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개인은 자신이 처한 불행의 원인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사회에 대한 막연한 피해의식으로 확대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소외와 단절이 누적된 현실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현실 세계에서 철저히 고립된 이들이 타인과 연결되는 주요 통로가 온라인 공간이라는 점도 묻지마 범죄 발생의 원인이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립 상태에 놓인 이들의 상당수가 하루 평균 4~5시간 이상을 스마트폰과 SNS에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실에서의 대면 소통이 단절된 상황에서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유일한 해방구처럼 기능하며 이는 취약한 정서를 더욱 파고들게 된다. 특히 대안적 정보를 접할 기회가 부족한 상태에서 유튜브나 SNS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편향된 콘텐츠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현실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이른바 ‘필터 버블(Filter Bubble)’ 현상에 더욱 쉽게 빠지게 된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는 온라인 혐오 표현 실태조사에서 온라인 공간이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과 적대감을 빠르게 확산시키는 통로로 작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복적으로 소비되는 혐오 담론은 개인의 좌절과 분노를 특정 대상에 대한 적대감으로 전환시키며 특히 여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전문가들은 고립된 개인이 이러한 환경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자신의 불행에 대한 원인을 특정 성별이나 집단의 탓으로 돌리는 왜곡된 인식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고립된 개인들이 이러한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자신의 불행을 △사회적 약자△특정 지역△특정 성별로 돌리는 희생양 찾기에 몰두하게 된다.
◆나아가야 할 방향
온라인상에서 증폭된 혐오와 현실의 고립이 맞물려 범죄라는 결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선 단순히 가해자를 엄하게 처벌하기보다는 사회적 예방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우선 경제적 소외 계층의 박탈감을 줄여줄 실질적인 안전망이 필요하다. 독일의 사회보험 제도는 국민이 △노령△산업재해△실업△질병 같은 위험 상황에서도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국가가 운영하는 체계적 복지 제도이다. 근로자와 기업이 보험료를 함께 부담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며 대표적으로 △건강보험△산업재해보험△실업보험△요양보험이 있다. 특히 이 제도의 경우 대부분의 국민이 의무적으로 가입하기 때문에 사실상 안정적인 사회 안전망으로 작동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일자리를 늘리기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실패하더라도 사회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정을 제공해주는 정책을 고려해 봄직하다.
또한 붕괴된 개인의 심리를 복구하기 위해 영국의 ‘사회적 처방(Social Prescribing)’ 제도를 참고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영국은 세계 최초로 외로움 문제를 전담하는 부처를 신설해 고립된 개인을 지역 사회와 능동적으로 연결하고 있다. 외로움을 느끼는 환자에게 약물 대신 △스포츠 동호회△예술 활동△자원봉사 같은 지역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연계하고 전문 상담사인 ‘링크 워커(Link Worker)’가 이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처럼 복지 사각지대의 고립 청년이나 장기 실직자를 선제적으로 찾아내 이들이 다시 공동체의 일원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보건△복지△치안이 결합된 통합 관리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마지막으로 소외된 이들의 분노의 기폭제가 되는 온라인 공간의 정화를 유도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일례로 유럽연합(EU)은 ‘디지털서비스법’을 통해 플랫폼과 사업자에게 불법 유해 콘텐츠 대응 의무와 투명성 확립 의무를 부과한다. 이와 더불어 올바른 디지털 시민 의식을 함양하기 위한 교육 체계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도 시급하다. 우리교육연구소의 연구팀은 이론과 지식 전달에 치우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가짜뉴스 분석과 팩트체크 실습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하며 일회성 교육에 그치지 않고 기존 교과에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통합해 지속적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차별적 분노는 결국 우리 사회의 소외와 단절이 곪아 터진 결과물로 볼 수 있다. 사회적 안전망을 통해 고립된 이들을 보호하고 온라인상의 왜곡된 혐오 문화를 바로잡는 전방위적인 노력이 선행될 때 비로소 묻지마 범죄의 근본적 원인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동기 범죄: 뚜렷한 개인적 목적이나 명확한 범행 동기 없이 불특정 다수의 타인을 향해 무차별적인 폭력이나 상해를 가하는 범죄. 기존엔 ‘묻지마 범죄’로 불렸으나 범죄의 원인과 예방책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지난 2022년부터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이다.
이서영 기자 12seoyoung@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