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 너머 보이는 풍경은 매일같이 반복된다. 번진 수채화같이 알아볼 수 없는 초록빛 잔상들을 바라볼 때면 문득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일상이 그저 어제의 되풀이로만 느껴질 때 까마득히 남은 생은 형벌처럼 느껴질 뿐이다. 이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은 우리를 자유에 목매도록 만든다. 아베 코보(安部公房)의 ‘모래의 여자’ 속 주인공 역시 반복되는 삶의 염증으로 그 일상에서 도망쳤다.
남자는 행방불명 됐다. 그 남자의 취미는 벌레수집으로 그는 새로운 종의 벌레를 찾기 위해 모래땅으로 향했다. 모래마을의 사람들은 사구 밑에 살며 모래에 파묻히지 않도록 매일 모래를 파낸다. 남자는 과부의 집에 하룻밤 몸을 맡기다 그곳에 감금되고 만다. 남자는 자신의 일상과 바깥 세계를 그리워하며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해 다시 사구 밑으로 보내진다. 유수 장치를 만들어 탈출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마침내 사다리가 내려진 순간 언제든 나갈 수 있단 생각에 탈출하지 않는다. 그리고 7년 뒤 남자는 실종돼 사망한 것으로 처리된다.
‘모래의 여자’를 관통하고 있는 메타포는 모래다. 모래는 시간의 흐름을 담고 있다. 작품의 흐름은 모래의 흐름을 따라 전개된다. 모래땅이라는 초현실적 배경에서 남자는 도망치고 싶었던 일상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자유를 잃었다. 이 초현실적인 경험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고 그에게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남자의 삶은 모래를 만나 드디어 흐르기 시작했다.
남자는 모래땅에 도착하기 전 삶의 의미는 이름을 남기는 것으로 성취된다 믿는다. 이후 권태를 느끼고 도망친 남자는 감금 생활로 자유를 잃고 반복되는 일상에 갇힌다. 그는 탈출이란 희망만을 꿈꾸며 갖은 노력을 다하지만 자유의 땅과 일상의 터전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돼 그 어디에도 꿈꾸던 자유와 이상은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남자는 결국 반복되는 일상에서 삶의 의미는 이상을 좇는 것이 아니라 자유 의지로의 선택임을 깨닫고 밖으로 나가길 거부한다. 이 장치는 전통적인 아크 플롯(arc-plot)을 비껴가는 현대 문학의 모습을 보인다.
온통 모래로 둘러싸인 초현실적인 배경의 이야기는 나 역시 눅눅한 모래에 잠기도록 만든다. 모래와 뫼비우스의 띠라는 메타포 그리고 남자의 눈으로 바라본 모래땅이라는 세계와 결말의 반전은 독자에게 충분히 충격적인 소설로 남는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인류 보편적인 실존에 대한 문제라는 점은 효과적으로 독자와 작품을 연결한다. ‘모래의 여자’는 자유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일상에 지친 현대인이라면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나연 기자 12nayeon@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