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쓴 글의 가치

등록일 2025년05월21일 23시15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기사글축소 기사글확대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이거 그냥 어차피 챗지피티(Chat GPT)에 물어보면 되잖아?” 친구가 툭 던진 말은 농담 같았지만 마음에 꽤 오래 남았다. 요즘은 과제 주제가 주어지면 가장 먼저 챗지피티에 입력한다. 요점 정리는 기본이고 논리적인 글쓰기와 보고서 초안까지 척척 만들어낸다. 처음엔 신기해서 썼고 이내 익숙해졌고 지금은 당연해졌다. ‘고뇌하며 쓰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정말 도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신문도 예전 같지 않다. 종이신문이 점점 줄고 나 포함 학보 기자들이 피땀 흘려 발행한 신문은 외대학보 칸에 수북히 쌓여 있다. 또 누군가가 집어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는지 캠퍼스 곳곳에 홀로 남겨져 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도 늘상 바쁜 일상 속에서 제목만 대충 훑고 지나칠 때가 많다. 또 이젠 모르는 것이 생겨도 교수님께 묻기보단 인공지능에게 질문하는 게 더 빠르고 편리한 것 같다.

 

이런 변화는 우릴 점점 더 ‘빠른 정보의 소비자’로 만들고 있는 듯하다. 깊게 생각하고 천천히 곱씹기보단 즉각적인 답변을 요구하고 손쉽게 얻은 정보에 만족하는 모습. 자극적인 장면과 중독적인 음악으로 만들어진 영상 자료를 주구장창 소비하며 편협한 알고리즘(Algorithm)에 갇혀 있는지조차 전혀 깨닫지 못하는 모습들. 그 결과 신문이나 글의 ‘깊이’와 ‘진심’은 점점 사라져 가는 것 같다. 그리고 한편으론 요즘 신문들이 예전만큼 깊이 있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정보 전달은 빨라졌지만 그 안에 진짜 ‘의미’가 담겨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빠르고 쉬운 대신 가볍고 얕은 글들이 넘쳐나는 시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에 어떤 글이든 쓸 수 있는 시대. 그 속에서 진심은 점점 희미해지고 그 빈자리를 화려한 문장과 표면적인 정보가 채우고 있는 듯해 아쉽기만 하다.

 

△속도△정확성△효율성 모든 면에서 인간을 앞선 생성형 인공지능은 이젠 감정까지 흉내 낸다. 이쯤 되면 인간의 ‘글쓰기’란 행위는 어쩌면 너무 느리고 고돼서 비효율적인 선택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젠 인간이 굳이 글을 써야 할까?”라고 묻는 누군가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여전히 손으로 직접 써야만 하는 순간들이 있다고 믿는다. 즉 생각을 고르고 문장을 다듬고 다시 지우고 또 쓰는 고된 과정을 거쳐야만 전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물론 인공지능이 쓴 글은 매끈하게 잘 정리돼있고 정확하다. 하지만 어떤 글은 정확함보다 주저함에서 비롯된다. “이 문장이 맞을까?” 혹은 “이 표현이 너무 감정적이지 않을까?” 등의 질문을 품고 문장 앞에서 머뭇거리며 쓴 글은 읽는 이에게 그 고민의 흔적을 전한다. 인공지능은 절대 흔들리지 않지만 인간은 망설이고 흔들린다. 나는 그 순간에서 오는 울림이 있다고 믿는다.

 

기사를 쓸 때면 늘 책임감을 느낀다. 이 글을 누가 읽어줄까? 누군가의 생각을 건드릴 수 있을까? 가끔은 내가 쓰는 문장이 누군가의 검색창에 키워드 몇 줄로 요약될까 봐 두렵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워진다. 단어를 고르고 사실을 확인하고 무엇보다 ‘진짜 내가 쓴 글’이라고 말할 수 있는 문장을 만들기 위해 애쓴다. 물론 나도 인공지능을 이용한다. 요약도 맡기고 참고자료도 검색한다. 하지만 모든 문장은 내가 쓴다. △내가 고민한 생각△내가 살아 있는 시간△내 말투를 실은 문장을. 내가 아니면 이 이야기는 세상에 없을 테니 지금도 계속해서 쓴다.

 

글을 쓴다는 건 어쩌면 “나는 존재한다”는 조용한 외침일지도 모른다. 말처럼 빠르지는 않지만 더 오래 남는다. 글에는 시간과 고뇌가 스며있다. 쓸모가 아닌 의미를 위해 나는 지금 이 순간도 그 의미를 찾아 한 글자씩 이어간다. 정보를 요약하는 건 인공지능이 잘할지 모르지만 마음의 결을 전하는 일은 아직 인간의 몫이다. 언젠가 그것마저 대체될 날이 오더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가 써 내려가야 할 문장이 있다고 믿는다. 오늘도 키보드를 두드리며 자문한다. “이 글을 인간이 썼다는 게 왜 중요할까?” 그리고 조심스럽게 답한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 흔들림이 담긴 문장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이나경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추천 0 비추천 0
유료기사 결제하기 무통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학보하는 여자 (2025-05-07 19:00:00)

가장 많이 본 뉴스

기획 심층 국제 사회 학술

포토뉴스 더보기

기부뉴스 더보기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현재접속자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