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동네 병원 인문학’을 읽고] 일상의 진료실에서 발견한 삶의 깊이

등록일 2025년06월04일 15시40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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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은 대개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공간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동네 병원 인문학’은 이 일상적인 장소가 단지 병을 고치는 곳을 넘어 인간의 삶과 죽음을 오롯이 마주하는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30년 넘게 동네 병원을 운영해온 내과 전문의 이여민 저자는 진료실에서 만난 수많은 환자의 이야기를 통해 병과 인간 그리고 의학과 인문학 사이의 경계를 부드럽게 넘나든다. 그는 병을 단순히 고쳐야 할 결함이 아닌 인간 존재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그 속에서 삶의 본질을 성찰한다.

 

‘동네 병원 인문학’은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평범한 병과 이를 앓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작품엔 감기나 위염 같은 가벼운 증상부터 △말기 질환△암△치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례가 등장하지만 저자는 질병 자체보다 그것이 환자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 스며들고 흔적을 남기는지에 보다 초점을 맞추고 있다.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그들의 말속에 숨겨진 △두려움△불안△삶에 대한 미련을 함께 꺼내 보여준다. 책은 결국 병이 단순히 육체의 문제가 아닌 삶의 태도 전반을 건드리는 존재임을 조용히 일깨운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마지막 장에 실린 ‘일상에서 죽음 명상하기’였다. 저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삶을 더 명료하게 바라보게 하는 일이다”며 죽음을 외면하거나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여기지 말 것을 권한다. 진료실에서 수많은 환자의 마지막을 지켜본 의사로서 그는 죽음이 먼 이야기가 아닌 누구에게나 가까이 다가와 있는 현실임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죽음 명상’은 다소 무겁게 들릴 수 있지만 저자는 그것이 오히려 가장 실용적이고 일상적인 삶의 태도라고 강조한다. 나 역시 죽음을 인식함으로써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을 더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단 생각에 닿게 됐다.

 

병이란 단어를 마주하며 그 안에 담긴 인간의 △고통△두려움△치유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병은 단순히 몸의 이상이 아닌 삶의 방향과 태도까지 되묻게 하는 경험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책을 덮을 때쯤 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보단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단 사실 자체에 경외심이 들었다.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조차 새롭게 다가왔고 그 모든 장면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낄 수 있었다. 조용한 진료실에서 시작된 작지만 깊은 이야기들이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잔잔한 파문을 남길 것 같다.

 

 

이나경 기자 10leenagyeong@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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