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우 번역가(서양어이탈리아 98)는 우리학교 이탈리아어과를 졸업한 뒤 우리학교 국제지역대학원에서 유럽연합 지역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그녀는 이탈리아 작품의 번역가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론 △알바 데 세스페데스(Alba de Cespedes)의 ‘금지된 일기장’△엘레나 페란테(Elena Ferrante)의 ‘나쁜 사랑 3부작’과 ‘나폴리 4부작’ 등이 있다. 이탈리아 문학의 매력을 우리말로 옮기는 김지우 번역가를 만나보자.
Q1. 우리학교 이탈리아어과에 입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중학교 때 성악을 하시던 아버지를 따라 이탈리아로 유학을 갔습니다. 덕분에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이탈리아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어요. 새로운 언어를 공부하는 것도 재밌었어요. 그래서 언어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단 생각이 있었습니다. 당시 최정화 통역사님께서 우리나라 제1호 동시통역사로서 활약해 통역과 번역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기도 했죠. 결국 제가 이탈리아어를 어느 정도 할 수 있었고 또한 해당 국가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싶단 생각이 우리학교 진학으로 이어졌습니다.
Q2. 우리학교 재학시절 어떤 학생이었나요?
호기심이 많은 학생이었어요.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어 학교 행사에 많이 참석했어요. 특히 국제 영화를 좋아해 당시 우리학교에서 주관하던 세계 영화제를 같이 준비하기도 하고 외대통역협회에 가입해 다양한 통역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Q3. 재학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무엇인가요?
외대통역협회에서 활동하며 당시 대학생으로선 하기 어려운 경험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학생이지만 정당한 보수를 받고 통역과 번역을 했기 때문에 일에 대한 책임감을 기를 수 있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 중 하나는 2학년 때 큰 국제적 경험을 할 수 없는 나이였음에도 통역협회를 통해 큰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것입니다. 당시 보스턴컨설팅그룹(Boston Consulting Group)과 LG칼텍스(현 GS칼텍스)에서 이탈리아 시칠리아(Sicilia)의 정유 공장을 방문해 벤치마킹(Benchmarking)하는 프로젝트가 있었어요. 해당 프로젝트 준비부터 시칠리아와 여수에 방문해 양국의 정유 시설을 직접 보고 비교하며 관련 용어들을 배우는 등 대규모 프로젝트에서 통역한 경험이 가장 큰 경험이었기에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제가 갖고 있던 실력으로 할 수 없었던 좋은 경험을 한 것 같아요.
Q4. 이탈리아어를 공부할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요?
제가 이탈리아로 유학하러 갔던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기에 이탈리아어를 제2외국어로 인식하며 배워야 했습니다. 별도의 준비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이탈리아에 간 지 6개월 만에 현지 학교에 바로 입학했죠. 그러다 보니 생존을 위해 공부를 해야 했어요. 현지 학교는 구술시험으로 평가를 시행했습니다. 예를 들어 세계 2차 대전에 대한 시험이 있다면 이에 대해 말로 설명해야 하는 거예요. 저는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었고 선생님께서 제 노력만이라도 알아봐 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10장에 달하는 내용을 전부 외워 앵무새처럼 말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무조건 외우는 과정이 언어 학습의 퀀텀 점프(Quantum Jump)를 하는 데 단단한 기초가 됐어요. 어휘와 문법을 배우는 과정이 여러 가지 문장을 통해 자연스럽게 체화된 거죠. 옛날 방식이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어느 정도 기간을 두고 문장 전체를 외우는 것도 언어를 학습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Q5. 번역가가 되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영화나 소설처럼 서사가 있는 글을 좋아했습니다. 직접 글도 써보고 싶었지만 창의력이 부족했어요. 그런데 번역이란 것은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번역자의 개입이 조금이나마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기 때문에 창의력은 약간 부족하지만 문학을 좋아하는 제가 가장 큰 대리 만족을 느끼며 할 수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로 지인을 통해 한길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당시 표본 번역을 30장 정도 했는데 책과 잘 맞을 것 같다고 해 본격적인 번역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Q6. 책을 번역하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우선 번역을 맡은 작품에 대한 파악을 위해 책을 읽습니다. 처음 읽을 땐 선입견을 품지 않도록 사전 정보를 찾아보지 않아요. 가볍게 읽은 뒤엔 작품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위해 작가에 대한 정보 및 작품의 배경 등을 조사하며 읽습니다. 이후 실질적인 번역에 들어갑니다. 번역할 땐 루틴(Routine)처럼 매일 특정 분량을 정하고 꾸준히 합니다. 중요한 건 하루 동안 번역한 내용을 재독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원문과 비교하며 놓친 부분이 없는지 확인합니다. 번역이 끝난 뒤엔 원서를 보지 않고 제가 번역한 내용을 쭉 읽어봐요. 문장의 흐름을 다시 검토하는 거죠. 이러한 과정을 거쳐 출판사에 보내면 출판사에서도 교정을 합니다. 편집자와 함께 교정 과정을 통해 독자들이 더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서로 의논합니다. 예를 들어 편집자가 “이 부분은 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고 하면 일부는 수정하기도 하지만 “이 부분은 작가가 의도한 부분입니다”고 설명해 조율하기도 합니다.
Q6-1. 번역하며 막히는 순간이 오면 이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궁금합니다.
‘막히는 순간’은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먼저 만연체와 같이 문장이 매우 어려운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가끔 문장의 시작부터 끝이 한 페이지의 반 정도를 차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구문 자체는 별로 어렵지 않은데 표현적인 면에 있어 번역이 딱 맞지 않는 느낌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엔 번역해야 할 글을 화면으로만 보지 않고 종이에 인쇄합니다. 그렇게 하면 번역이 퍼즐 맞추듯 맞춰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엔 조금 다른 과정을 거칩니다. 앉아서 한 문장을 붙잡고 3~4시간을 고민해도 끝까지 해결책이 안 떠오를 수 있어요. 그럴 땐 우선 덮어놓고 그날 번역해야 할 분량을 마친 뒤 쉬는 시간에 제가 예전에 번역했던 책을 읽어봅니다. 똑같은 작가의 책인 경우엔 그 작가의 다른 책을 보지만 아니라면 비슷한 장르의 다른 책을 봐요. 제가 번역한 글이 아니더라도 좋은 글을 보면 고민하던 문장이 풀리고 좋은 표현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때까지 잠깐 시간을 두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Q7. 그동안 번역하신 작품들을 보면 엘레나 페란테와 알바 데 세스페데스 등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 많습니다. 이와 같은 작품을 주로 번역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가 처음 출판 번역을 맡은 작품이 엘레나 페란테의 ‘나의 눈부신 친구’입니다. ‘나의 눈부신 친구’가 큰 성공을 거두며 엘레나 페란테의 작품을 모두 번역하게 됐습니다. 첫 번역작이 여성의 서사를 다룬 작품이다 보니 그 이후론 여성 소설가의 목소리를 담은 작품이라면 다른 출판사에서도 자연스럽게 제게 연락을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마치 여성 작가 전문 번역가처럼 인식되기도 하지만 꼭 그 분야만 선호하는 건 아닙니다. 남성 작가의 작품도 얼마든지 번역할 수 있어요. 다만 제가 여성이다 보니 여성 화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더 공감하는 부분이 있고 작가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제 목소리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Q8. 그동안 번역하신 책 중 우리학교 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나요?
‘나의 눈부신 친구’는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 작품은 워낙 대작이기도 하고 작품 안에 이탈리아의 모든 것이 담겨 있거든요.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사랑△성장△우정 등의 감정이 담겨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나의 눈부신 친구’는 우리나라의 ‘토지’와 같은 대하드라마 같으면서도 인간의 내밀한 심리를 파고들기 때문에 4부작의 긴 장편이란 점이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학생들이 꼭 읽어봤으면 좋겠습니다. ‘남겨진 자들의 삶’이란 책도 추천하고 싶어요. 이 작품은 자전적 소설로 특이하게 작가가 실제로 겪었던 사랑하는 연인의 자살을 다뤄요. 연인이 자살한 뒤 작가가 남은 생존자로서 트라우마를 이겨나가는 과정을 담담하지만 따뜻하게 그리고 있는 작품이에요. 문학 작품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라면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Q9. 앞으로의 계획 또는 목표가 궁금합니다.
일차적으론 좋은 작품들을 계속해서 많이 번역하고 싶습니다. 좀 더 장기적으론 이탈리아와 관련한 문화와 지식을 우리나라에 많이 전달하고 싶어요. 전 ‘지식 소상인’이란 말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지식은 많이 접할수록 좋은 거잖아요. 그래서 이탈리아와 관련된 것에서 제가 ‘지식 소상인’ 역할을 하고 싶단 소망이 있습니다.
Q10. 마지막으로 번역가를 꿈꾸는 우리학교 후배들에게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번역할 땐 출발어뿐 아니라 도착어 또한 중요합니다. 국어 문법의 정확성도 필요하지만 다독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책을 읽을 땐 정독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좋습니다. 책을 정독하며 좋은 문장이 있다면 줄도 치고 다시 읽어보기도 하며 한국어 실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최근 인공지능 관련한 이야기가 많이 보입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아직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특히 문학의 경우엔 영원히 대체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해요. 학생들이 인공지능을 뛰어넘는 번역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본인만의 색채를 가진 문장을 써내는 번역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김민서 기자 09kimminseo@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