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 없이 작별하는 것은 가능할까. 김연수 작가는 “떠나는 순간에 아쉬움이 남아선 안 된다”고 조언하며 여행을 ‘눈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그토록 찬탄하던 곳과 작별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라 정의한다. 그렇다면 난 아직 제대로 된 여행을 경험하지 못한 것 같다. 어떤 여행이든 마치고 돌아오면 가지 못한 곳과 하지 못한 것에 늘 아쉬움이 남아 사진첩을 뒤적이기 때문이다. 그 대상이 장소이든 관계이든 작별 인사는 언제나 아쉬운 법이다.
김연수 작가의 책 ‘언젠가, 아마도’는 작가가 지난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연재한 칼럼을 엮은 여행 산문집이다. 작가는 국내외를 넘나들며 ‘여행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사색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여행하며 발견하는 감정들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혼자 떠나는 여행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다. 작가는 여행지에서 완벽히 혼자가 된 경험을 통해 ‘스트레인저(Stanger)’란 단어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했다고 한다. 여행자는 때로 어떤 사회적 연결 고리도 없는 단독자가 된다. 낯선 곳에서 완벽한 단독자가 되는 것은 일상의 짐을 잠시 내려놓는 해방감처럼 느껴진다. 이런 자유로움과 익명성이야말로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이기에 크게 공감하며 읽었다.
작가의 인터뷰 중 깊이 공감한 대목이 있다. 소설가는 좌절과 비관이 강력하게 스며든 사회에 맞서 “삶이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의 이야기를 계속 공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산문집에서도 작가는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건넨다. “멀리서 볼 때 라스베이거스가 신기루처럼 우리를 유혹하는 까닭은 결국 대개는 패배할 운명이라고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소망하고 다시 꿈꾸는 일이 바로 인간의 일이기 때문이리라”란 문장은 희망을 상정하는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 한 우리의 세계는 계속 이어질 수 있단 다짐처럼 들린다. 희망의 언어는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이번 호를 끝으로 난 학보를 뒤로 하고 교환학생을 떠난다. 지금 계획한 일들 중 상당수는 현지에서 이루지 못하고 돌아올지도 모른다. 떠나기도 전에 돌아오는 순간이 아쉬운 것은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이 벌써 자리 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여정이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미련 없이 그 순간과 작별하고 돌아오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 됐으면 좋겠다. 김연수 작가의 조언처럼 눈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도 감사히 그곳과 작별할 수 있는 여행을 경험하기를 기대해 본다.
윤고은 기자 10goeun@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