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는 만병의 근원이라지만 나는 언젠가부터 피곤한 상태가 좋다. 이 고질적인 성향의 이유를 곱씹다 마침내 답을 찾았다. 피곤함은 적어도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내려 애썼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늘 하루 거둔 성과가 무엇이든 주관적인 감각인 피로에 안주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성과 없는 피로는 결국 게으름에 대한 합리화로 끝나기 일쑤다. 내가 외대학보에 지원한 가장 큰 이유 역시 근거 있는 피곤함을 얻고 싶어서였다. 훗날 돌이켜봤을 때 스스로에게 떳떳하게 남는 결과물을 쥐고 싶었다.
글쓰기는 잡념은 지우고 적당한 피로를 남긴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난 대학 논술을 준비하던 시절부터 대학 과제에 이르기까지 줄곧 주어진 주제 안에서의 글쓰기만 반복해 왔다. 반면 기사는 내가 직접 주제를 찾아내야 한다는 점에서 완전히 달랐다. 정해진 정답을 찾아내는 일보다 훨씬 복잡하고 막막했지만 그만큼 내게 큰 보람을 안겨줬다. 홀로 글을 완성해 좋은 성적을 받았을 때의 자만심을 내려놓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진정으로 배우는 사람이 됐다. 꽤 긴 시간을 들여 정성껏 완성한 기사임에도 불구하고 재차 반복되는 피드백은 모두 수긍할 만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피로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배움에서 오는 피곤함이야말로 내가 얻을 수 있는 피로 중 가장 값진 종류라고 생각한다. 혼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허점을 7번에 걸쳐 수정하고 나면 초기 원고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완성도 높은 글이 나온다. 일주일간 쉼 없이 아이템을 찾아 발제하고 △회의△마감△조판의 과정을 거쳐 활자로 찍혀 나온 첫 기사를 읽는 일은 기대보다 훨씬 뿌듯했다. 이런 질 좋은 피곤함을 얻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수확이다.
첫 번째 기사를 완성하며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내가 생각보다 섬세하지 못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기사에 들어갈 작은 숫자와 수치의 오류를 거듭 바로잡아야 했고 수정본이 누락 없이 반영됐는지 몇 번이고 확인해야 했다. 이젠 정말 완벽하다고 안도했던 조판 마지막 날마저 미처 보지 못한 허점이 발견됐다. 좋은 글을 쓰는 것과 지면 위에 정확한 사실을 꼼꼼하게 얹어내는 일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혼자였다면 내 바이라인을 달고 나갔을 수많은 오점을 떠올릴 때마다 아찔한 긴장감이 스친다.
지금은 두 번째 신문인 1119호를 준비하고 있다. 외대학보에 들어와 꼭 써보고 싶었던 인물면을 맡아 여러 동문에게 취재 요청을 보냈지만 섭외조차 결코 만만치 않음을 뼈저리게 체감하는 한 주다. 수습 교육을 받을 때만 해도 여유 있어 보였던 2주의 발행주기가 턱없이 빠듯하게만 느껴진다. 그럼에도 동기인 113기 기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서로의 아이템을 나누는 시간은 여전히 설렌다. 처음 다뤄보는 지면에 대해 편집장님께 질문을 쏟아내며 죄송한 마음과 든든함을 동시에 느낀다. 남은 외대학보 생활이 막막한 부담보다는 기분 좋은 설렘으로 다가오는 학기 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