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방영하는 다큐멘터리(Documentary). 헝가리(Hungary)의 한 신입 프로듀서(Producer) 아론(ron)의 패기에서 시작된 이 기획은 ‘장미 박람회’라는 다소 엉뚱한 제목으로 시작한다. 이 책의 제목이자 책 내 다큐멘터리 제목인 ‘장미 박람회’는 외르케니 이슈트반(Istvny)이 시도한 독특한 작품이다. 어떤 △녹음본△삽입곡△연출 등이 쓰였는지 상세히 서술돼 있어 마치 실제 감독의 촬영 기록을 읽고 있는 듯하다. 또한 다큐멘터리에 이 제목을 붙인 데엔 흥미로운 배경이 있다. 아론은 더 이상 치료할 수 없는 환자의 가장 극적인 순간을 촬영해 대중에게 공개하고 싶다는 결심으로 방송국에 제안서를 보냈다. 그러나 방송국의 강한 거부로 합의 끝에 어두운 제목인 ‘우리는 죽는다’ 대신 화사한 ‘장미 박람회’라는 다소 이질적인 명칭으로 촬영을 시작한 것이다.
출연자는 △더르버시(Darvas) 교수△미코(Mik) 부인△제이 너지(J. Nagy) 총 세 명의 불치병 환자이다. 첫 번째 출연자는 허가 지연으로 이미 세상을 떠나 아내의 인터뷰를 토대로 방영했다. 무뚝뚝하고 연구에만 몰두했던 언어학자 더르버시는 온몸이 마비된 상태에서도 연구의 마지막 장을 적기 위해 아내의 손을 빌리고 그녀를 애칭으로 불렀다. 그로써 남편의 마지막 열흘이 역설적으로 그녀에겐 결혼 17년간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으며 아내였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두 번째 출연자는 정원사 미코 부인이다. 임종을 앞두고 있지만 본인보다 어머니를 더 걱정해 다큐멘터리 출연료로 어머니의 생계에 보탬이 되고자 출연했다. 세 번째 출연자는 자신의 최후를 예술적 프로젝트(Project)로 받아들이는 작가 제이 너지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하나의 예술적 창작으로 완결하려는 집착 끝에 심장 발작으로 쓰러진다.
이 책은 인간이 죽음을 배척하고 외면하는 시선을 뒤집는 그로테스크(Grotesque)적 장치가 주요한 역할을 한다. 잔잔하게 부조리를 드러내는 아이러니(Irony)는 죽음을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것으로 드러내며 존재론적 철학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나는 예술의 연장선에 놓인 그 개념을 집약한 이 글의 주제 의식에 단숨에 매료됐다. 그리고 이러한 통찰에 대해 생각해 볼 겨를 없이 바쁘게 치여 왔던 삶에서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특히나 이 책은 내가 청소년과 어른의 경계선 상태에서 만난 책이라 더욱 뜻깊은 책이다. 인생에서 더 많은 것을 생각할 시기에 ‘죽음’에 관해서 사유할 수 있는 심오한 경험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장미 박람회는 소설로 풀어내는 인간의 최후에 대한 초월적인 묘사와 작가 특유의 죽음을 향한 시선을 담은 작품이다. 이 책을 통해 인간 개개인의 마지막을 기록하는 실험적 시도를 읽는 것을 넘어 ‘현대 사회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마주해 보면 어떨까.
송주원 기자 11juwon@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