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성과 설득력

등록일 2025년09월03일 16시50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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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성은 당시의 사정과 사회의 요구에 맞는가를 뜻하는 단어로 방중교육에서 나는 ‘시의성을 갖춘 기사’를 거듭 강조해 배웠다. 그땐 시의성이 뉴스의 당연한 덕목이라 여겼지만 기사를 쓰면서 시의성은 종종 나에게 족쇄로 작용했다. 첫 기사로 기후변화에 대해 다루고 싶었으나 시의성과 거리가 멀었다. 기후변화에 대해 다룬다 하더라도 칼럼(Column)이 아니라 기사로서 다루는 것이 어려웠다. 기사로 풀어내려면 새로운 정보가 필요했다. 그 지점에서 시의성이 보도의 핵심 기준이 되면서 동시에 주제에 대한 한계가 될 수 있음을 배웠다. 

 

사회가 원하는 팩트(Fact)를 찾고 전하는 일은 기자의 본분에 가깝다. 팩트에도 우선순위가 있다. 그중 속보는 다른 팩트에 비해서 높은 가치가 매겨진다. 따라서 사회가 원하는 정보를 빠르게 찾고 전달하는 것 다시 말해 시의성을 갖춘 기사를 작성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시의성만으로 보도의 의의를 갖추기 어렵다.

 

기사뿐만 아니라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 사회가 시의성에 얼마나 큰 가치를 부여하는지 알 수 있다. 한 음식이 유행을 타면 어디서든 그 음식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이하 AI)이 부상한 이후로 각종 기능 앞에나 AI가 붙여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막상 기능을 사용하면 이게 AI가 맞는 건가 싶은 것도 있으며 유행하는 음식을 먹고 나면 이게 왜 유행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게 정말 맛있어서 유행하는 것이 아닌 유명해서 유명해진 느낌을 받는다. 별 내용이 없단 것을 인지한 후에야 자연스레 묻히곤 한다. 

 

식당과 기업도 시의성을 좇는다. 문제는 사회의 요구를 무작정 좇다 보면 왜 사회가 이를 필요로 하는지 놓쳐버린다. 겉은 화려해 보이지만 내용의 설득력은 빈약하다. 마찬가지로 기사 주제를 정할 때 시의성을 기준으로 찾다 보면 여러 주제가 나오지만 과연 설득력이 있을 수 있는 내용일지 회의감이 든다. 기사는 수필과 다르게 독자 중심의 글이다.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주제를 적는 것이 아닌 읽히고 싶은 글을 써야 한다. 어떻게든 관심을 끌고 흥미로워 보여야 한다. 그렇다 보니 시의성을 고려하면서도 주제 안에서 설득력을 스스로 발견해야 한다. 주제를 찾는 것 자체로도 힘들지만 무엇보다 그 주제를 어떻게 하면 설득력 있게 적을지가 정말 어렵다. 그래서 질문을 적극적으로 던지려고 한다. ‘이 기사를 왜 쓰려고 하는지’가 나에게 먼저 설득 돼야 한다. 다음으로 ‘왜 이 기사를 독자들이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한다.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정말 문제가 무엇인지 드러난다. 시의성은 팩트의 겉면이다. 반면에 설득력은 팩트의 내용이다. 왜 지금 사회가 이 내용을 원하고 있는지 질문해야 한다. 

 

시의성 속에서 설득력을 발견하는 작업은 사회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귀를 기울이고 경청하는 작업이다. 주변 일에 경청하고 내 입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일이 기자의 본질이 아닐까. 나는 흘려듣는 사람이었다. 뉴스에서 나오는 일들이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며 무관심했었다. 무언가를 골똘히 고민하는 일이 오랜만이다. 평상시엔 “너무 생각 없이 살고 있나”란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나면 그 안에서 굳어진 것은 없고 나의 하루가 휘발된다. 내 안에 무언가 남는 속도보다 날아가는 속도가 빨라 가벼운 존재로 살아간다. 외대학보에서 아직 첫 기사를 내보내지 않았지만 주제를 고르는 과정에서 ‘지금’보다 ‘지속’의 가치를 배운다. 주제 분석은 기사의 설득력을 찾는 작업이기도 하지만 결국 내 말의 설득력을 찾는 작업이다. 나는 설득력이 있는 존재로서 시간이 지나도 묻히지 않는 사람이 됐으면 한다.

박서현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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