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외대학보 112기에 다시 지원한단 소식을 들은 109기 동기들은 그럴 줄 알았다며 응원의 문자를 보내줬다. 지난 2024년 한여름에 시작한 방중 교육부터 2024년 한겨울에 끝난 1099호 발행까지 외대학보와 함께한 내 첫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 학기 동안 외대학보 109기 기자로 활동하며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마감하면서도 다음 호 기사에 대해 고민했고 인터뷰 실패로 스트레스도 받았다. 늦은 시간까지 진행되는 마감 일정으로 인한 피로도도 높았고 외대학보 일정에 개인 일정을 포기하거나 변경해야 하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1099호 취재를 할 때까지만 해도 내가 다시 외대학보에 돌아오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당시엔 그저 예정돼 있던 1년 간의 교환학생 생활만 잘 마무리하고 오자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떠난 독일에서의 생활은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행복했다. 별다른 계획 없이 떠나는 여행도 좋았고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얘기하는 것도 재밌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여름학기를 보내고 방학이 됐다. 잦은 여행 때문에 지친 상태로 방에 누워 휴대폰을 보다가 동기들의 소식을 접하게 됐다. 누군 인턴을 시작했고 누군 휴학하고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누군 대외 활동을 3개씩 하고 있었고 누군 졸업 시험을 통과했다. 분명 같은 시기에 대학 생활을 시작한 친구들인데 다들 믿기 힘들 정도로 열심히 살고 있었다. 문득 매주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고 학교 수업은 주에 이틀만 가는 내 삶이 그들에 비해 한참 뒤처진 것처럼 느껴졌다. ‘만약 내가 교환학생을 오지 않았다면’이란 생각으로 시작해 그들의 삶과 내 삶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그때 외대학보에서 학술 공모전이 처음으로 열렸다. 내가 학보 기자로 활동할 당시에 수많은 아이디어 중 하나로 언급됐던 공모전이 실제로 시행된 것이다. 공모전 공고를 접하자마자 동기들 못지않게 열심히 살았던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공모전에 글을 써서 냈고 그 글로 대상까지 받게 됐다. 공모전에 낼 글을 쓰면서 그동안 잊고 살았던 내 삶의 진정한 활기를 되찾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난 다시 외대학보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다시 돌아온 외대학보에서 난 109기가 아닌 112기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됐다. ‘해봤던 일이니 전보단 쉽게 할 수 있겠지’라며 막연하게 생각했던 외대학보 활동은 내가 없던 1년 사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었다. 밥을 먹고 치우는 방식부터 공모전 시행과 지면 변화까지 크고 작은 것들에 변화가 있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마냥 짧은 시간은 아니었단 걸 다시금 느끼게 됐다. 내가 1년 동안 변한 것처럼 외대학보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게 어색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전에 외대학보 활동을 하며 아쉬웠던 부분들이 점점 보완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학보 활동을 하다 보면 금방 지치고 가끔은 회의감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이 지나고 찬찬히 돌이켜보니 힘들었던 기억보다 더 가치 있는 것들이 많이 남아있었다. 어려운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터득했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야도 넓어졌으며 무엇보다도 학교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됐다. 특히 외대학보를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이 대학 생활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새로운 사람들과 다시 시작하는 학보 생활이 내 삶에 또다시 큰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다시 잘 해보자 외대학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