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모란시장’를 읽고] 상처받은 생명들이 얽힌 공간에서 묻는 우리의 생명권

등록일 2026년04월01일 17시40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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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개 식용 관행을 고유 전통으로 볼 것인가’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주목했던 논제이다. 해당 논제는 동물권 그리고 나아가 생명권에서도 주요한 문제이다. 현대에 오며 동물 또한 기본적인 권리를 지닌다는 관념이 확산하며 개를 식용으로 소비하는 경우가 줄었다. 또한 지난 2024년 ‘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돼 오는 2027년부터 개 식용을 위한 △도살△사육△유통△판매 등이 법으로 금지된다. 모란시장은 성남시에 있는 실존하는 시장으로 식용 개고기를 파는 전국 최대 시장으로 유명하다.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 출판된 이 책은 모란시장에서 도축 도중에 탈출한 개 ‘삽교’의 시점을 통해 개고기 도축을 비판한다.

 

삽교리에서 주인 할머니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며 평화롭게 살던 삽교의 삶은 어느 날 밤 완전히 뒤바뀐다. 누군가 개집을 오토바이에 통째로 싣고 도축장으로 납치한 것이다. 이 도축장엔 모란시장의 실세인 박 사장이 개를 식용으로 도살해 큰돈을 벌고 있었다. 삽교는 가족이 눈앞에서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참혹한 현실을 목격하지만 박 사장의 둘째 부인인 경숙 덕분에 가까스로 목숨을 건져 명진과 함께 대도빌딩에서 살게 된다. 명진은 박 사장의 친형으로 아버지에게 빌딩을 물려받으면서 동생의 눈엣가시가 되어 감금당한 채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인물이다.  한편 경숙은 가난한 집안을 살리기 위해 박 사장의 폭력을 묵묵히 견디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도축을 도맡아 하고 있다. 명진은 이런 경숙에게 연민과 호감을 품고 있지만 이를 눈치챈 박 사장의 무자비한 폭력 탓에 그저 무력하게 창문 너머로 시장만 바라볼 뿐이다. 어느 날 도축할 개가 부족해지자 박 사장이 경숙에게 강압적으로 화풀이를 했고 한계에 달한 경숙은 남은 개들을 모두 풀어버린다. 결국 경숙은 박 사장에게 끔찍하게 폭행당해 정신을 잃고 병원으로 이송된다. 하지만 박 사장 역시 개들이 도축 당하던 방식과 똑같이 누군가의 전기봉에 의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시간이 흘러 노견이 된 삽교는 치매 판정을 받고 죽음의 문턱에서 △경숙△아빠△옛 주인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숨을 거둔다.

 

책을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생명권이란 윤리적 주제를 마주하면서도 등장인물 중 누구 하나 선과 악으로 쉽게 재단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갈 곳 없는 이를 거둬주고도 가혹하게 착취하는 잔인한 박 사장이나 살기 위해 억지로 생명을 앗아가면서도 끝내 제 목숨을 걸고 남은 개들을 탈출시키는 경숙을 보며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또한 경숙을 구해주고 싶으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나약한 명진의 태도 또한 씁쓸함을 안겼다. 특히 가족을 잃게 만든 경숙에게서 목숨을 건지고 도리어 그녀를 연민하는 삽교의 모습은 개의 시점으로 묘사되면서 경숙의 행동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한편 상업적으로 꽃의 가시를 무심히 잘라내면서도 상처받은 이웃이 위기에 처했을 땐 기꺼이 손을 내미는 능평꽃집 여자 역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생명이 물건처럼 사고 팔리는 모란시장엔 이렇듯 저마다의 아픈 사연이 얽혀 있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식용 개에 관한 동물권 논의를 넘어 과연 진정한 생명권이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묻게 된다.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소외된 이들과 △동물△사람△식물이 모란시장이라는 가장 삭막하고 메마른 공간에서 묵묵히 연대하는 모습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가장 빛나고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 준다.

 

 

송주원 기자 11juwon@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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